공지사항

여성보호센터에서의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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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클라이피
댓글 0건 조회 149회 작성일 24-04-1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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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동은 내게 친숙한 동네였다. 친한 친구가 살기도 했고 SRT역을 자주 이용하기도 해서 수서동
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착각이었다. 4년 전, 아파트 단지를 지나 수서동 산 꼭대기에 닿으
니 빨간 벽돌로 지어진, 전혀 알지 못했던 마을이 눈 앞에 나타났다.  이곳은 서울시립 여성보호센
터로서 서울시 여성 노숙인들을 위한 생활시설이다.  이곳에서 나는 4년 간 매주 생활인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진료를 해왔다.
여성보호센터 생활인 중에는 조현병, 지적장애, 알코올 사용장애, 치매 등 다양한 정신적 어려움
을 겪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저마다의 사정으로 가족들과는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되어 준다. 불안해 하면 안심시켜주고 이해하지 못하면 다
시 설명해 주기도 한다. 가끔 누군가는 조절되지 않는 정신 증상으로 인해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경
우도 있지만 대체로 서로가 조화롭게 어울려 공동체의 삶을 살아간다.
이곳에서 많은 생활인들은 봉투작업, 끈 작업, 카페관리 등 자활 근로를 통해 단조로운 일상을 벗
어나 근로의 보람을 맛보기도 한다. 체조나 인지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
다. 여름에는 야외공간에 간이 수영장을 두고 물놀이를 하기도 하며 봄, 가을에는 바자회, 플리마
켓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돌봄에는 대가가 따른다.’ 부장님을 포함한 의무팀과 함께 생활인들의 일상의 개선을 위한
상의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투약과 치료를 거부하는 생활인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설득한다든지, 운
동량이 부족한 비만한 생활인을 대상으로 비만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정신적으
로나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다. 사회적인 상호작용이 거의 없는 생활인들을 대상
으로 그룹치료를 진행하면서 전공의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니더라도 말
한마디, 표정, 행동 하나같은 점진적이고 작은 변화라도 보인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
다 24시간 생활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재활에 대해 고민하는 여
성보호센터 가족분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생활인들의 삶의 질이 이렇게 나아지기 힘들었을 것이
란 생각이 든다.
지난 봄, 열악한 환경에서도 24시간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와 고군분투하는 직원분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 흔히 조현병, 치매 등의 질환은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간주되
어 만성적인 경과의 환자에게 재활치료가 소홀했던 측면이 있었다. 여성보호센터에서의 4년간
의 경험은 이러한 만성 정신 질환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환경적인 자극과 진심 어린 소통
이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 시키는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여
기에는 많은 분들의 헌신과 보이지 않는 후원의 힘이 발휘되고 있었다. 소외된 우리 주변의 이웃
과 더불어 행복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할 것이
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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